성령(Holy Spirit)
기독교는 성령 곧 거룩한 영을 갖는 유일한 종교입니다. 성령에 관한 교리를 생각할 때에, 먼저 앞에서 그리스도가 성경의 중심 주제라고 한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성령의 이름을 알지 못하며, 단지 성령이 누구인지 그리고 무엇을 하시는 분인지 만을 들을 수 있을 뿐입니다. 그의 인격적인 이름에 대해 성경이 침묵하고 있는 것은 매우 의미있습니다. 이는 그 자신의 이름을 감추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그 사역만이 높아지도록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요 15:26).
A. 성령의 인격:
성령에 대해 무인칭 대명사로 그것(It)이라 부르지 마십시오. 그는 모든 신자들 가운데 내주하시는 실제적인 하나의 인격체이시기 때문입니다. 때로 우리는 보이는 사람만이 참된 인격체라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는 신체의 일부가 아닌 온전한 하나의 인격이요 성품입니다. 이 인간 육체는 단지 이 지구상에 있을 동안에 살도록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기구(vehicle)일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인격의 ‘그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죽어서 그 신체가 무덤에 남아있을 지라도, 그 영혼은 그 신체를 떠나게 되어있습니다. 그때 참 인격은 성령과 똑같이 눈에 보이는 대상이 결코 아닙니다.
성령님의 다음과 같은 반응들은 그가 인격이시라는 사실을 계시하시는 것입니다.
⑴ 그는 근심하십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엡 4:30)
⑵ 그는 시험을 받으십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드느냐?”(행 5:9)
⑶ 그는 저항하십니다.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
⑷ 그는 훼방도 받으십니다. “누구든지 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사하심을 영원히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처하느니라 하시니.”(막 3:29-30)
⑸ 그는 속임의 대상도 되었습니다.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행 5:3)
성령님은 성경 여러 곳에서 “하나님”으로 지칭됩니다. 그는 또한 다음과 같은 성경 구절 속에서 신적 속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⑴ 전능성 – 그리스도의 탄생 시에 성령님은 마리아와 예수의 보호자였으며, 마찬가지로 우리의 보호자가 되십니다(눅 1:35).
⑵ 전지성 – 우리 생애에서 성령님은 모든 것의 모든 것을 다 아시고 계십니다(고전 2:10).
⑶ 편재성 – 우리 인생에 있어서, “그(성령님)는 너를 결코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라.”(시 139:7-17). 성령님은 항상 계시는 분이십니다.
⑷ 영원하신 영 – 우리의 출생부터 하늘에 이르기까지 우리 삶에 있어서, 성령님은 우리로 하여금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도록”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성령은 또한 성경에서 여러 가지 상징과 범례들로 규정되는데, 이는 성령의 신적 사역을 묘사하는 표현들입니다.
⑴ 비둘기 – 요 1:32. 비둘기는 성령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위에 내리실 때에 사랑과 인애의 상징입니다.
⑵ 물 – 사 44:3; 요 7:38-39. 한번 구원을 받은 구원인의 영적 갈증을 해결해 줄 분은 오직 성령님이십니다.
⑶ 기름 – 삼상 16:13. 제사장의 귀에 먼저 기름을 바르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기 위함입니다. 다음 제사장의 엄지에 기름을 바르는 것은 그가 하나님을 위해 행동하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말씀따라 행하게 하는 것이 바로 성령님의 우리들 삶 속에서 행하시는 사역입니다.
⑷ 바람 – 요 3:6. 성령님은 조용하고도 은밀하게 우리의 구원과 일생활의 삶에 활동하시는 분입니다.
⑸ 불 – 행 2:3-4. 불은 정화와 시험과 심판의 상징입니다. 이것들은 우리들 삶에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사역입니다.
⑹ 두루마기 – 삿 6:34(확대역).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을 성령의 두루마기로 옷 입혔습니다. 여기에서 두루마기는 곧 보호를 말하며, 성령님은 우리의 보호자가 되심을 의미합니다.
B. 성령의 사역:
성령은 성경 전체를 통해 매우 능동적인 사역을 감당하고 계십니다. 다음은 그가 관여하신 사역에 대한 일부 목록입니다.
⑴ 성령께서 말씀하십니다: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행 13:2)
⑵ 성령께서는 성도를 위해 간구하십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6)
⑶ 성령께서 예수를 증거하십니다: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요 15:26)
⑷ 성령께서 교회를 감독하십니다: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행 20:28)
⑸ 성령께서 성도를 진리에로 인도하십니다: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 16:13)
⑹ 성령께서 진리를 친히 가르치십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 14:26)
⑺ 성령께서는 창조 사역에 참여하셨습니다: “태초에…하나님의 신이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창 1:1-2)
⑻ 성령께서는 거듭나게 하는 일을 하십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요 3:3, 5-8).
⑼ 성령께서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 다시 살리셨습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롬 8:11)
⑽ 성령께서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십니다: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고전 6:11)
⑾ 성령께서 우리의 구원을 봉인하십니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엡 1:13)
⑿ 성령께서 우리를 구원 가운데 인도하십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 8:14; 갈 5:18)
우리가 그리스도인 삶을 살아갈 때에, 우리는 매순간 우리를 향해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인격적 사역을 인식해야만 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성령님에 의해 충만하게 되고 또 지배를 받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만일 우리가 죄 가운데 거하면 성령님은 우리 삶 속에 역사하실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간혹 생각이나 행동으로 허물과 죄에 빠질 지도 모르나, 요한일서 1:9에 있는 말씀대로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되지 않기를 위해 즉각적으로 죄를 자백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만일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죄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게 하실 터이요”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바로 성령 하나님과의 교제를 지속할 수 있는 비결입니다. 엄밀히 말해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에서 국면하는 가장 큰 위험은 그의 삶 중에 죄를 허용하는 일입니다. 그것은 경제적 파산이나, 육체적 질병이나, 정신적 고독이나, 언어적 공박이나, 핍박이나 혹은 여러 종류의 다른 곤란과는 비교될 수 없는 가장 큰 원수입니다. 왜냐하면 죄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단절시켜버리고, 성령을 소멸시키며, 사단으로 구원으로 향하는 우리 길을 변하여 멸망으로 향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5:19-21절은 우리에게 우리가 예민하게 대처해야 할 죄의 목록을 열거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확실하고 분명하게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고 한다면, 우리 영혼의 원수는 바로 사단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싸움은 우리가 싸워야 할 매일의 치열한 전투입니다(엡 6:11-18). 승리는 “주님이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고, 우리가 서로 사귐을 갖고(하나님과 우리),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시게 될 때” 오는 것입니다(요일 1:7). 매일 매시간 짧은 회계장부를 기록하듯 하나님과의 관계를 점검하는 것은 이런 측면에서 매우 요긴합니다. 우리 죄의 극각적 고백은 우리 영혼의 원수에 대한 유일한 방어책입니다. 요한일서 1장을 계속해서 읽고 암기하십시오. 그리스도인의 승리적 삶을 사는 비밀입니다.
C. 성령의 열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 삶 속에 두 가지 종류의 열매를 산출할 수가 있지만, 오직 한 가지만이 합당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 소욕에 따라서 그 열매 또한 산출하게 됨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열매는 육체의 열매와 성령의 열매입니다. 그 열매는 누가 그 삶을 지배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 5:16-17)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어쨌거나 우리는 매일 이 세상에 살면서 열매를 거두고 있는데, 어떤 열매입니까? 이 세상의 압력은 우리를 유혹하여 우리 육체적 욕망을 채우라고 합니다. 현대의 유혹은 광고, 미디어, 잡지, 그리고 수천의 다른 곳에도 널려있습니다. 사단은 이 세상의 신입니다(요일 5:19). 다시 육체의 하는 일에 대해서는 갈라디아서 5:19-21절을 참조하십시오. 그리스도인이 아닌 자는 아무 선택의 여지가 없이 그저 육체의 열매만을 산출할 뿐입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그런 불신자라도 선행을 하고 심지어 세상 사람들이 갈채를 보낼 종교적이거나 사회적인 업적을 남길 수가 있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보실 때에 그것들은 아무런 영적 이익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성령의 사역은 우리 삶에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합니다. 그래서 오직 중생받은 그리스도인만이 이러한 열매를 맺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이 열매가 단수인 사실에 유의하십시오. 우리는 우리 열매를 만질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그래서 성령님이 열매를 다 맺으시나 혹은 전혀 안 맺으시게 되는데, 이는 우리가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만일 죄가 우리 삶에 들어오게 되면, 그 열매는 성령의 열매로부터 육체의 열매로 바꿔지게 됩니다. 그래서 모든 그리스도인의 소욕은 불가불 그 삶에 바른 열매를 보는 것이어야 합니다. 성령은 우리 삶에 역사하시어 당신의 열매를 맺으시길 원하시며, 이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그의 인도와 통치에 복종할 때 가능해집니다. 그가 모든 것의 주님이 아니라고 하면, 그는 결코 아무 것의 주님도 아니실 것입니다(갈 5:22-24).
우리는 성령의 열매를 위하여 승리의 자리를 차지하려 일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그 자리를 얻었고, 그 위치에서 일하는 것입니다. 우리들 삶에는 날마다 전투가 있지만, 거기에는 오직 우리의 승리만이 있을 따름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갈 5:24)고 했습니다. 그 승리는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승리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육체를 십자가에 못박는다 함은 우리 행위로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안에 살아계시고 우리가 그 안에서 사시는 그 분에 의해 되어지는 일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즉, 내가 성령의 지배에 복종할 때에, 거기에서 나는 매일의 승리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멀리할 수 있을지 몰라도, 성령은 우리를 결코 떠나지 않으시니, “그 안에서 우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기”(엡 4:30)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의 내주하심은 우리가 천국 문에 이를 때까지 영원한 것입니다.
D. 성령의 은사: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신에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지?”라고 질문을 해본 일이 있습니까? 만일 내가 새 자동차를 누구에게 선물로 준다고 하면, 그것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이라고 기대하겠습니까? 내게서 선물 받은 그 사람이 단지 그것을 쳐다보기만 한다거나, 어떤 전시장에 집어넣어 두고 사람들로 와서 보게 만들 것이라고 기대하겠습니까? 아니면 그 사람이 그것을 타고 운행을 할 것이라고 기대하겠습니까? 틀림없이 자동차의 목적은 운행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물로 준 목적 또한 그 사람이 그 차를 타고 출퇴근을 하거나 친구를 태워주거나 아니면 시외로 나가 드라이브를 즐기거나 하는 운행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의 선물과, 성령의 내주하심과 영적 은사를 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분을 위해 살도록 하신 것입니다.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는 내가 너희의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1,4-7)고 했습니다. 이 장의 다음 구절과 성경의 다른 곳에서도 성령께서 성도에게 주시는 은사의 목록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모든 성도들은 적어도 주를 위해 쓰임받을 수 있는 한 가지 이상의 은사가 있다는 것을 압니다(롬 12:4-8).
그렇다면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로 하여금 당신이 우리에게 주신 그 은사들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이라고 기대하시는지를 생각해 보십니까? 세상에 다니고 또 성경을 배우면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은사(재능)을 보고 질투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성령의 은사는 매 사람마다 독특하여 마치 그의 특별한 자녀에게 특별한 선물을 주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고전 12:18)이라고 했습니다. “무엇이 내가 받은 은사인가”라고 사람들에게 묻습니까? 그들은 잘 모릅니다. 하나님께 물어 보십시오. 그리고 우리 은사를 찾아 발견하고 그 은사대로 주의 일을 실행합시다.
은사 가운데는 오늘날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것들도 있습니다. 사도행전은 초대교회의 전환기 시대를 배경으로 합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은 전환기 책이며, 다른 성경이 이것을 지원하지 않는 한 그 책에서 은사의 교리를 세울 이유가 없습니다. 그 당시 성도들은 신약 성경을 갖고 있지 않은 까닭에, 하나님께서는 오순절에 기적과 계시와 방언(외국말)으로 말하게 함으로 그의 권능과 인정을 나타내셨습니다. 이것은 인류를 구속하기 위해 오신 구세주의 새 경륜의 소식을 빠르게 확산되도록 했습니다. 이것은 오순절 성령강림 때의 기적이었으며 다시 반복되지 않을 것입니다. 한 번의 갈보리 사건, 한 번의 육체적 부활과 한 번의 승천과 같이 오순절 사건도 단 한번의 단회적 사건입니다. 오순절 날에 알려진 세상의 모든 곳에서 모여 온 사람들은 다 자기들의 말로 복음을 들었으며, 그래서 그들은 돌아가서 자기 백성들에게 세상의 구주가 죽음에서 부활하셨다고 전파했던 것입니다(행 2:4, 22-24). 오늘날, 방언 은사는 더 이상 활동적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현재 세상의 모든 말로 된 성경을 우리가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단지 우리가 갖고 있는 이 언어를 사용해서 이 위대한 지상 명령을 성취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
계시의 은사 또한 오늘날 더 이상 활동적일 수가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충만한 계시가 신약 성경의 기록된 계시 형태로 우리에게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예언의 은사도 같은 이유로 끝났습니다. 이것들은 당시 우리와 같은 신약 성경을 갖지 못하던 특별한 시대에 일시적으로 필요했던 것들입니다. 하나님은 신약성경이 완성되기 까지 구약성경을 통해 자기 백성에게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3:10에 도래할 신약성경에 대해 언급하면서, “온전한(헬라어로 정관사 “그”가 포함)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고 했던 것입니다. 이 말씀은 야고보서 1:25에서,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그”) 율법”이라고 함으로써 그것이 신약성경임을 확정합니다. 그런즉, 하나님의 말씀은 이제 기록된 형태로 완성이 되어 위에서 언급한 부분적이고 임시적인 은사들을 필요 없게 하였습니다. 사실 성경보다 더한 계시나 예언이나 다른 첨언들을 갖는 것은 계시록 22:18-19에 기록된 심판을 초래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E. 성령의 인침:
성령은 그 스스로 인(印: 도장)치는 사역을 하십니다.
⑴ 소유권의 인침(도장 찍음)입니다(딤후 2:19).
⑵ 신분을 확인하는 인침입니다(엡 1:13-14).
⑶ 안전을 보장하는 인침입니다(엡 1:13-14).
⑷ 신분 전환의 완료를 나타내는 인침입니다. 이 인은 합법적 신분의 인침입니다(렘 32:10).
⑸ 성도의 의를 확정하는 인침입니다(롬 4:11).
⑹ 그리스도인의 표시를 나타내는 인침입니다. 일반 도장의 인은 늘 왁스에 그 표시가 남지만은 성령의 인침(도장)은 우리 인격과 심비에 남습니다(고후 1:22). 이것은 “담보”의 인입니다. 담보는 후일에 완전한 보상을 받기 위해 받는 것으로서, 성령의 내주하심은 곧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담보”와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엡 4:30)고 하였던 것입니다. 성령의 우리 안에 내주하심은 우리가 천국 문에 이르게 될 완전 보장이요 담보인 것입니다.
F. 성령의 세례:
침례(세례, baptism)라는 단어는 “…들어가기 위해 또는 일치시키기 위해 담그다”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성령의 침례(세례)란 우리가 구원받을 때에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 안에 들여보내는성령의 역사를 의미합니다.여기에서“그리스도의 몸”이란 중생한 성도들로 구성된 교회를 의미합니다.“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성령으로 침례(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 12:13)고 하신 말씀입니다. 이것은 교회의 시작인 오순절에 주셨던 약속이었습니다.
성령 침례(세례)는 권능의 부여나 어떤 특별한 체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요, 구원받은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로 들어가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말합니다. “많은 날이 지나지 않아 너희가 성령으로 침례(세례)를 받으리라.”라는 사도행전1:5 말씀은 교회의 시작인 오순절에 오실 성령을 지칭함이었는데, 그 말씀대로 10일 만에 성령이 오셨습니다. 사실 오순절 전에도 성령은 사람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즉 오순절 전의 성령은 “우리와 함께 with us”하셨고,오순절 이후에 성령은 “”우리 안에 거주 in us “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사람들과 함께 하시던 성령께서는 구원받은 성도들 “안에” 영원히 들어와 계시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에서“성령 침례(세례)”라고 말할 때는 항상 집합적으로 어떤 그룹에 즉 교회에 적용된 것인지 개인에게 적용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성령과 불의침례(세례)”는 구원과 심판의 대조를 말해주는 표현임을 아셔야 합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 속에서 구원이냐 심판이냐 하나를 갖게 됩니다(마 3:11-12; 눅3:16-17).
“성령 세례(세례)”를 체험했다고 주장하면서 방언을 말하는 사람들이나, 치료의 권능과 기적 행함과 귀신 쫓는 축사의 능력을 받았다는 사람들은 다 거짓 선지자요 거짓 교사입니다. 베드로후서 2장을 읽어보십시오. 그들은 성경으로 자신들의 체험을 해석하려하기 보다는 오히려 자신들의 체험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있는 자들입니다. 마귀는 짐짓 거짓으로 기적적 체험을 조장할 수 있습니다. 진리의 영도 있지만, 거짓 마귀의 영도 있는 것입니다(요일 4:1-6).
현대 성도가 성령의 은사를 선용할 수 있는 열쇠는 보다 탁월한 방식으로 자극되어야 합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고 한 말씀을 명심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그리스도인으로 우리의 은사들을 주님의 교회를 위해 실용하기 위해 우리를 자극하게 하는 추진력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것을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다 내어 놓을 때에 비로소 그것이 언제든지, 어는 곳이든지, 무슨 일이든지, 주인이 요구에 대응할 무슨 증거든지에 쓰임받을 유용한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인격과 사역에 대해서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이 나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하면 할수록 우리는 더욱 더 우리 삶 속에서 임재하시고 역사하시는 그분을 느끼고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